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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보사찰 조계산 송광사 <전남 순천>

방랑자333 2013. 8. 3. 15:31

 

 

 

 

 

 

 

산은 산데로 한데 어울려서 

조계산을 이루고

그 사이에  계곡과 냇가를 이룬곳에 자리한

 

순천의 송광사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있는 절로

20년 전에 다녀오고 나서,

지난주 흐리고 가랑비가 오던날 

우연한 인연되어

다시 들르니, 땀은 많이 흐르지만

1.2km를 홀로 완복하는 감회가 새로웠다.

 

 

 

 

 

 

 

 

 

 

 

 

 

 

書 : 목인 전종주선생  

 

 

 

 

 

 

 

 

 

 

 

걸어 오르는 길 옆의 편백나무들

 

 

 

 

 

 

 

 

 

 

 

 

 

 

 

 

 

 

 

 

 

 

 

 

 

 

일주문 옆의 각종 비석들

 

 

 

 

 

 

 

 

 

 

 

 

 

 

 

 

 

 

 

 

 

 

 

 

 

 

 

 

 

 

 

 

 

 

 

 

 

 

 

 

 

 

 

 

 

 

대웅보전

 

 

 

 

 

 

 

 

 

지금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하면 송광사는

신라말 혜린(慧璘)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송광산 길상사(吉祥寺)였으며

100여 칸쯤 되는 절로 30, 40명의 스님들이 살 수 있는 그리 크지않은

규모의 절이었다고 한다. 그 뒤 고려 인종때 석조(釋照)대사께서 절을 크게 확장하려는

원을 세우고 준비하던 중 타계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50여년 동안 버려지고 페허화된 길상사가 중창되고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정혜결사가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부터이다.

지눌스님은 9년 동안의(명종 27년1197년 ~ 희종 원년) 중창불사로 절의 면모를 일신하고

정혜결사운동에 동참하는 수많은 대중을 지도하여 한국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였다.

 이 때부터 송광사가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정유재란, 6.25사변 등 숱한 재난을 겪었으나 지속적인 중창불사로

지금의 위용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송광(松廣)이라는 이름에는 몇가지 전설이 있다.

그 첫째는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셔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절이라는 뜻이다.

곧 '송(松)'은 '十八(木)+公'을 가리키는 글자로 18명의 큰스님을 뜻하고,

'광(廣)'은 불법을 널리 펴는 것을 가리켜서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서 불법을 크게 펼 절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보조 국사 지눌스님과 연관된 전설이다.

곧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옮기기 위해 터를 잡으실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깍은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떨어져 앉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다한다.

이 전설을 토대로 육당 최남선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솔개의 사투리)라 하여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 풀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찍부터 산에 소나무(솔갱이)가 많아 '솔메'라 불렀고

그에 유래해서 송광산이라 했으며 산 이름이 절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  자료:  송광사 홈페이지 발췌  >

 

 

 

 

 

 

 

 

 

 

 

 

 

 

 

 

 

 

 

불일보조국사백로지탑

 

 

 

 

 

 

 

 

 

 

 

 

 

 

 

 

 

 

 

 

 

 

 

 

 

 

 

 

 

 

 

 

 

 

 

 

 

 

 

 

 

 

 

 

 

 

 

 

 

 

 

 

 

 

 

 

 

 

 

 

 

 

 

 

 

 

 

 

 

 

 

 

 관음전이 보이는 풍경

 

 

 

 

 

 

 

 

 

 

 

 

 약사전 과 영산전 모습

 

 

 

 

 

 

 

 

 

 

 

 

 

수행중이라 출입금지 지역:

풍경도 없는 이유는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하며

또한 많은 당우에 비해, 관음전과 몇군데를 제외하고 주련도 없는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