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둘레들 ***/뿌리 (慶州李氏)

익재영정< 국보 제110호 >

방랑자333 2007. 9. 2. 18:31

 

 

 

 

 

국보 제110호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충선왕(忠宣王)과 같이 중국에 있을 때에 원(元)의 화공 진감여(陣鑑如)가 그린 것이 그 찬기(贊記)에 의하여 알 수 있다. '익재집(益齋集)'에는 오수산(吳壽山)이라고 하면서 일본(一本)에 진감여(陣鑑如)로 쓴 것은 틀린 것이라고 하였지만 도리어 이것은 잘못이다.


호상(胡床)에 약 30도(度)의 각도(角度)로 좌면하여 앉아 있는 상이며 비수(肥瘦)없는 세선(細線)으로 설색후(設色後)에 다시 윤곽(輪廓)을 잡고 있는 고고유사묘식(高古遊사描式)의 초상(肖像)인데 면모(面貌)에 의연(毅然)한 개성을 느끼게 한다. 조선시대(朝鮮時代)의 초상화(肖像畵)가 대개 우측상(右側像)을 이루고 있는데 안유(安裕)의 초상화와 함께 좌측면(左側面)으로 되어 있는 것은 역시 시대풍조와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현(李齊賢)은 충렬왕(忠烈王) 13년(1287)에 탄생하여 공민왕(恭愍王) 16년(1367)에 졸거(卒去)하였는데 백이정(白이正)의 문하로서 정주학(程朱學)을 수학하여 그의 탁출(卓出)한 품성(稟性)으로 일찍이 그 존재를 나타내어 중직(重職)으로 누진(累進)하다가 때마침 연경(燕京)에 있었던 충선왕(忠宣王)이 만권당(萬卷堂)을 세워 그를 불러들이자 연경(燕京)에 가서 원(元)의 학자 요수염(姚燧閻)·조맹부(趙孟부) 등과 함께 고전(古典)을 연구하여 그 학명을 날리게 하고 1319년(충숙왕(忠肅王) 6년)에 충선왕(忠宣王)을 수행(隨行)하여 중국(中國) 강남지방(江南地方)을 역유(歷遊)하였다. 이후 복잡한 원조(元朝)와의 관계에서 충숙왕(忠肅王)·충목왕(忠穆王)의 수난을 그의 탁월한 외교절충으로 타개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이 후 더욱 요직을 임명하여 드디어 공민왕(恐愍王) 5년(1356)에는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다. 만년에는 왕명(王命)으로 실록을 편찬하였고 '익재난고(益齋亂藁)', '익재집(益齋集)', '역옹패설(역翁稗說)' 등 많은 문장을 남긴 여대(麗代) 제1등의 문신일 뿐만 아니라 그 학문은 원(元)에도 알려졌으며 원(元)의 조맹부(趙孟부)의 서체(書體)도 우리나라에 도입(導入)하였다.

그의 영정은 이리하여 여대(麗代)의 희소(稀少)한 유품인 동시에 그것이 원(元)의 화백에 의하여 그려져서 원(元)의 화풍을 전하며 또 그 찬기(贊記)는 그 유개를 확실히 전하여 소중하다

<자료출처/문화재청) >